-“야, 야, 큰일 났어!!”

 

“아…. 뭐예요…. 지금 시각이 몇 시인데….”

 

 

눈에 졸음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지금은 새벽 1시. 내일의 근무를 위해 잠자리에 들었다가 시끄럽게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깨어나고 말았다.

 

 

“뭔데 그래요….”

 

-“민태구!!”

 

“…민태구?”

 

 

그야말로 두 눈이 번쩍 떠지게 만드는 위대한 이름에 채윤은 몸을 벌떡 일으켜 핸드폰을 꽉 붙잡았다.

 

 

-“걔 거기서 다른 죄수들이랑 몸싸움 벌인 것 같다.”

 

“그, 그래서? 지금 어떻게 됐어요?”

 

-“교도관들이 진압은 했는데, 지금 독방에 갇혀서도 진정이 안 되고 있어서 난리야! 지금 교도소 그야말로 비상이라고, 비상!”

 

“아니, 잠깐만. 그걸 왜 나한테 말하지? 의사나 심리상담자가 그런 거 제어하는 거 아니야?”

 

 

묘하게 이상한 느낌에 살풋 인상을 찌푸리자 역시나 전화기 너머에서 잠시 말이 없더니 곧 전에 없던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채윤이 너도 알다시피, 민태구 걔가 껌뻑 죽는 애가 너 말고 또 누가 있냐? 그렇지 않아도 이번 싸움에서 네가 좀 연관된 것 같,”

 

“내가 뭘!!”

 

-“아씨, 깜짝이야. 넌 또 왜 소리를 지르고 난리야. 하여튼 지금 거기서 너 오기만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다니까, 좀 가봐야 할 것 같아.”

 

“조옴-! 나는 협상을 하는 네고,”

 

-“그럼. 우리 채윤이 아주 뛰어난 네고시에이터지. 그럼 이번 협상도 무사히 마무리 지으리라고 믿을게? 내일 출근은 천천히 하고, 알았지?”

 

“아니, 잠…. 여보세요? 여보세요?”

 

 

애타게 상대방을 불러보지만 돌아오지 않는 대답에 서둘러 전화를 다시 걸어본다. 그러나 어떻게 이럴 때만 그렇게 행동이 빠른 건지, 짧은 시간에 핸드폰까지 꺼놓은 상대방에 채윤은 이를 악물었다.

 

*

 

“9025. 나와. 면회다.”

 

“아, 오셨나 보네? 잠깐, 잠깐만. 이거 가져가셔야지.”

 

 

화색이 도는 얼굴을 진저리난다는 표정으로 쳐다본 교도관이 뒤를 돌려고 하자 들리는 목소리가 썩 반갑지 않다. 워낙 사고도 많이 치고 국제적으로 뛰어다녔던 범죄인이라 그런지 머리 회전이 심각하게 비상했다. 진짜 저 새끼는 파놉티콘(Panopticon)에 처넣어도 탈출할 거라고 모두가 입을 모아 말했었다.

그런 자가 왜 자신을 멈춰 세우는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허리춤에 손을 살짝 올린 채 뒤를 돈 교도관은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그,그,그거 당장 안 내려놔?!”

 

“음? 가져가라니까요? 원래 사적으로 사용하려고 했는데, 생각해보니까 그러면 이렇게 오는 면회도 안 올 것 같아서요. 자. 가져가요. 얼른?”

 

 

그의 손바닥 위에 존재하는 잘 벼린 칼에 교도관의 관자놀이에서 식은땀이 비죽 흘러내린다. 저렇게 사람 좋게 웃고 있어도 언제 머리가 돌아서 날뛸지 모르는 놈이다. 그러기에 아주 조심스럽게 천천히 손만 뻗은 교도관이 빠르게 칼을 낚아챈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 빨간 천을 본 황소처럼 달려들던 사람이 맞는지 순하게 손을 내리지만, 철저한 감시 속에서 아무도 모르게 칼을 소지했던 놈이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끌어안은 느낌에 앞장선 교도관의 걸음이 몹시 분주하다.

 

 

“안녕하세요. 많이 늦었는데, 고생이 많으세요.”

 

“아유, 아닙니다. 그럼 면회하시고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으시면 여기 밑에 버튼 눌러주세요.”

 

“네, 감사합니다.”

 

 

먼저 면회가 이뤄지는 방에 들어선 교도관이 피곤하지만 평소처럼 예의를 갖추는 채윤에 손사래를 친다. 무슨 사고가 났다 하면 보호자처럼 언제나 호출되는 그보다는 어쩌면 자신이 더 낫겠다는 생각에 방을 나선 교도관은 눈짓으로 그를 향해 문을 가리켰다.

 

 

“들어가.”

 

“….”

 

 

터벅터벅 차디찬 복도를 걸을 때만 해도 실없는 웃음을 짓고 있던 얼굴이 순식간에 가라앉아있다. 흡사 난동을 부리기 전과 같은 분위기에 말려야 하는 건가 싶었지만, 채윤과 함께 있을 때는 어떠한 소란도 일으키지 않았기에 묵묵히 문을 닫을 뿐이었다

 


 

Inception




“어라, 채윤씨?”

 

“……하-, 민태구씨.”

 

 

싸웠다고 할 때부터 그는 많이 다치지 않았을 거라는 확신은 있었지만, 지금 병원에 누워 전치 2주를 받은 사람과는 다르게 너무 멀쩡한 얼굴에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이번에는 왜 그런 거죠? 분명 저번 주 면회 때,”

 

“으음. 나 걱정돼서 온 거 아니었어요?”

 

 

또 발동됐구나.

저를 바라보는 묘한 눈동자. 과거에는 인질을 죽이기 전 마지막 조건을 내놓았을 때의 표정. 지금은 딱 사고 치기 전 표정. 이대로 살얼음 낀 대화를 이어나간다면 분명 흐지부지한 끝을 이유 삼아 그는 끝나지 않는 사고를 칠 게 뻔하다. 1%의 오차도 없었던 지금까지의 경험이 말하고 있다.

 

 

“다 걱정돼서 왔어요. 독방에 있으면서 무리해서라도 나 부를 민태구씨도 걱정되고, 그거 막으시는 교도관분들도 걱정되고요.”

 

“참 피곤하게 산다니까. 그거 전부 걱정하면, 채윤씨는. 본인 걱정은 누가 해주나?”

 

“그러게요. 누가 사고 좀 덜 쳐서 제가 조금이라도 쉴 수 있다면 참 좋을 텐데 말이죠.”

 

 

빙긋 웃으며 말하는 채윤에 웃음을 터뜨린 태구가 몸을 뒤로 편하게 기댄다.

고분고분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친절하게 단호한 것도 아니다. 잠을 방해받아 기분 나쁜 티를 역력히 드러내는 상대방에도, 태구는 전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이상토록 편안한 기분이었다.

 

 

“하채윤씨.”

 

“네.”

 

“내가 족쳐놓은 새끼들. 신원 조회는 해 봤어요?”

 

“…아니요.”

 

“한 번 해보고 오지 그랬어요. 그럼 오히려 나 잘했다고 칭찬할지도 모를 텐데.”

 

 

사고 쳐 놓고서도 칭찬을 바라는 뻔뻔함에 채윤이 기가 찬 웃음을 흘린다. 정말로 요즘 너무 그를 예뻐라 만 한 걸까. 이러다가는 멀지 않은 훗날 같은 수감자를 죽이고서도 자신을 보며 웃고 있을 것 같아 채윤은 그에게 무언가 강력한 한 방이 필요하다는 걸 느꼈다.

 

 

“우리, 우리가 제일 잘하는 거 하나 해볼까요?”

 

“잘하는 거?”

 

“네. 협상이요.”

 

 

무슨 생각을 한 것인지 일을 할 때처럼 반짝거리는 채윤의 눈동자에 태구의 미간이 살풋 좁아진다. 또 어떤 발칙한 조건으로 자신을 얌전히 묶어두려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애초에 자신이 외칠 수 있는 답지가 두 개일 리가.

 

 

“너무 불리한 협상 아닌가? 적어도 각자 자유의 몸이며 나는 인질이라도 있어야 공평하게 이루어질 것 같은데. 안 그래요?”

 

“민태구씨가 지은 죄치고는 상당히 가벼운 형량에 바라는 대로 꼬박꼬박 오는 면회. 이 정도면 그만한 핸디캡 정도는 둬도 될 것 같다고 생각하는데.”

 

 

졌네, 졌어. 이미 마음속으로는 두 손 전부 들고 있었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 입술에 힘을 꾹 준 태구가 고개를 끄덕거린다.

 

“좋아요. 채윤씨가 가져온 조건은?”

 

“출소할 때까지 사고 치지 말기.”

 

“…어후, 너무 강한데요?”

 

“그러니 협상을 하자는 거죠. 민태구씨가 원하는 대가와 제가 바라는 조건으로.”

 

 

솔직히 채윤은 자신이 내건 협상이 순순히 받아질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분명 그라면 적절한 타협을 말할 것이기에 아예 처음부터 세게 나가자는 게 그동안 터득한 방법이라면 방법이었다.

 

 

“내가 바라는 조건이 뭔 줄 알고 그렇게 쉽게 말할까? 뭐, 좋아요. 내가 바라는 대가는….”

 

“….”

 

“채윤씨가 네고시에이터를 그만두기.”

 

 

정말로 민태구에게 면역이라도 된 건지 눈 하나 깜짝 않는 자신에 내면에서 홀로 손뼉을 친 채윤은 더 해보라는 듯 눈썹을 한 번 들썩였다.

 

 

“채윤씨가 너무 나한테 적응된 건가. 이제는 욕도 안 하네요.”

 

“애초에 성립되지 않을 협상이라는 걸 민태구씨가 잘 알고 있을 거니까요. 무엇보다 제가 일을 그만두면 가장 손해는 당신 아닌가요?”

 

 

사실 민태구에 관한 아무런 자신감 없이 이렇게 매번 그를 상대하는 게 아니라는 걸 채윤은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경찰청에 있는 모든 사람이 알고 교도관들도 전부 알고 있는 사실을 정작 본인이 모를 리가. 태구는 유독 채윤에게 약했고 처음에는 긴가민가했던 채윤도 교도소에서 난리를 치고 자신을 찾는 게 한 손가락을 채우자 확신할 수 있게 되었다.

민태구가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에게만큼은 마음을 열었구나.

 

 

“하하! 나를 완전히 파악하고 있네요, 채윤씨?”

 

“서로 밑바닥까지 보였는데 이 정도는 기본이죠.”

 

“알았어요, 알았어. 그러면 대가를 낮춰서……, 아-.”

 

 

좋은 생각이라도 났다는 듯 몸을 앞으로 쭉 뺀 태구가 눈을 올려 그를 쳐다본다.

 

 

“그러면 공평하게 내가 출소할 때까지 채윤씨도 연애든 소개팅이든 하지 않기. 어때요?”

 

“…그게 무슨….”

 

“생각을 해봤는데. 혹시라도 채윤씨가 옆에 애인이라도 생기면 당연히 나한테 소홀할 거 아니에요? 그러면 어느 순간부터 나는 나 몰라라 할 수도 있고…. 그렇게 되면 내가 너무 슬프잖아요? 응?”

 

 

비죽 올라가 있는 입꼬리는 전혀 슬퍼 보이지 않지만, 말의 어조는 진심이었기에 채윤은 그냥 자신이 이 일을 그만두는 게 더 쉬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왜 내가 애인도 마음대로 못 만들지? 지금 내가 누구 때문에 잠도 못 자고 이러고 있는데?

 

 

“민태구씨.”

 

“이번 협상 꽤 파격적인 조건 아니에요? 듣자 하니 채윤씨 일도 바빠서 애인은 무슨. 사람도 잘 못 만나고 있다면서? 그냥 채윤씨는 늘 그랬던 것처럼 살고, 나는 사고 안 치고. 또 채윤씨만 좋은 조건 아닌가?”

 

 

민태구는 저가 반드시 이루고자 하는 조건은 취하고 만다. 그의 뛰어난 언변과 화려한 약점 잡기로 지금까지 이루었던 사업이 얼마나 되는가. 결국, 이번에도 무조건 자기 뜻대로 할 것임을 알기에 별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감는 채윤이다. 덕분에 안면에 환하게 피어나는 태구의 미소를 보지 못했지만 말이다.

 

 

“그럼 협상 종결. 혹시라도 하는 말이지만, 나 몰래 뭐 하고 그런 거 하지 마요. 잘 알겠지만 내가 또 그런 건 기민하게 잘 알아차리거든.”

 

 

모든 전술을 알아채고 자신의 지휘 아래 움직이게 했던 사건을 어찌 잊을까.

채윤은 아무래도 오늘 결근이라도 내야 할 것 같은 심정으로 생글생글 웃는 태구를 따라 포기하듯 웃어버리고 말았다.

 

*

 

“형님. 오늘 그 새끼 다시 들어온다고 합니다.”

 

“그 새끼?”

 

“예. 2주 전에 형님이,”

 

“아아-, 난쟁이?”

 

“예.”

 

 

산책 시간에 편히 앉아 바람을 느끼고 있던 태구의 눈동자에 번뜩 흥미와 동시에 날카로움이 스친다.

 

 

“위치는?”

 

“아무래도 아예 다른 곳으로 갈 것 같습니다. 산책 시간도 달라서 마주칠 일도 없을 것 같고요.”

 

“…없을 것 같으면…, 으쌰.”

 

 

앉아 있던 계단 같은 의자에서 뛰어내린 후 가볍게 기지개를 켠 태구가 흘긋 뒤를 돌아본다.

 

 

“만들면 되지. 안 그래?”

 

 

예, 맞습니다. 자신의 뒤를 졸졸 따라오는 몇몇 부하들을 보며 태구는 입술을 슥 손으로 훑었다.

 

*

 

“씨팔, 민태구 이 개새끼.”

 

 

이를 부득부득 간 남자가 화장실벽을 닦으며 거친 말을 내뱉는다. 다쳐서 받지 못한 벌을 화장실 청소로 대신하겠다며 더럽고 지저분한 곳으로 등 떠밀렸을 때의 기분이란.

아무리 씹어 죽여도 시원치 않을 이름에 얼마나 욕을 했을까. 끼익 거리며 누군가 들어오는 소리에 남자는 어떤 새끼인가 싶어 눈을 잔뜩 부라리며 뒤를 돌았다가 그만 청소도구를 떨구고 말았다.

 

 

“ㅁ,미,미…, 민태구….”

 

“어라. 내 이름 되게 오랜만에 다른 사람한테 불려보네?”

 

 

지옥의 사자라도 본 듯 벌벌 떠는 몸을 보며 환히 웃음 지은 태구가 화장실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남자에게 가까이 다가선다.

 

 

“어때. 화장실 청소는 좀 할만하고?”

 

“…….”

 

“그때 내가 입도 다치게 했나? 분명 나는 사지만 손 본,”

 

“으아악! 교도, 으읍!”

 

 

소리 지르는 입을 그대로 손으로 막아 벽에 가두자 떨리는 몸의 진동이 자신에게까지 전해진다. 이러다 오줌이라도 지리겠다 싶어 입을 막은 손을 살짝 떼어낸 태구는 자신보다 한참 아래에 있는 눈을 보며 나긋이 입을 열었다.

 

 

“그냥 잘 지냈나 싶어서 안부 인사 온 건데. 이렇게 나오면 좀 곤란하지.”

 

“나, 나한테 왜, 왜 그래…. 내가…, 내가 뭘….”

 

“네가 반반하다고 말 한 네고시에이터. 아니다. 이렇게 말하면 못 알아먹으려나. 너랑 협상 본, 그 협상가님.”

 

“….”

 

“다친 몸으로 환자 노릇 하면서 생각해 보니까 어때. 아직도 그 사람 죽이고 싶어? 강간하고 싶고?”

 

 

분명 입은 웃고 있지만 눈은 사람 한 명을 얼어 죽일 정도로 싸늘하다.

2주 전 자신을 고기 다지듯 팰 때에도 무자비한 폭력에 질색했지만, 지금은 그가 온전히 전해오는 거센 기(氣)에 숨이 쉬어지지 않을 지경이다.

 

 

“내가 여기 있다는 이유로 널 죽이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큰 착각이야. 내가 이 좆 같은 세상 살면서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 게 얼마나 많은지 알아?”

 

 

절박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남자에 씨익 미소 지은 태구가 그의 볼을 두어 번 두드리더니 숙인 허리를 편다.

 

 

“아랫도리 단속 잘하고. 입단속은 더 잘하고. 알겠지?”

 

“네네, 네….”

 

“두 번 다시 내 눈에 띄지 않기를 바랄게, 응?”

 

 

겁에 질려 어느새 오줌까지 지린 남자를 미련 없이 등 진 태구의 표정이 가볍다.

오늘 채윤씨가 언제 온다고 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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